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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탁 / tkdgkg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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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20 23: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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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도 굴이 있고...
요한복음 7장 3절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예수님은 순식간에 유명인이 되었다. 보리떡으로 수천 명을 먹이시고, 병든자를 고칠 뿐 아니라 말하는 것이 서기관과는 다른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대신 할 수 있다는 등의 말들은 유대인들, 특히 제사장들에게는 신을 모독하는 죄로 인정되기에 충분하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7장 1절처럼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로 다니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외부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내부, 즉 가족에게서 생긴 것이다. 예수님에게는 3남 2녀의 동생들이 있었다. 예수님은 장자로 인정되어지고 있다. 물론 외경에서는 막내로 인정되지만 우리 개신교에서는 장자로 인정된다. 아무튼 그 동생들은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의 아버지인 요셉은 죽었고 그 생계를 장자인 예수님이 짊어지셔야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30세가 되자 생계를 중단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데만 전념하셨다. 이러한 모습을 동생들은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이런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교회일에는 무척이나 열심을 가지고 일을 한다. 하지만 가정에는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반응은 보편적으로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예수님의 동생들처럼 원망형이다. 보리 떡으로 다른 사람들만 배불리 먹이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작 동생들은 굶고 있는데.. 이런 원망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격려형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들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격려하고 함께 일하는 것이다. 비록 예수님를 격려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격려하셨다.
마태복음 19장 27절 -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격려하셨다. "이 길이 영광의 길이다. 이 길이 가장 가치있는 길이다. 나와 함께 이 길을 가자"

우리가 생각할 때에 두 가지 모습이 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가 무슨 교회 일을 한단 말이가..이 말도 그럴 듯 하고
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들보다 더욱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 말도 그럴 듯 하다.

이 두 가지 말들이 다 그럴 듯 하게 보이는 까닭은 우리가 이성적, 혹은 논리적 계산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비교적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마 6 :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이 신앙인들의 계산이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생계 유지와는 동떨어져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일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산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동생들은 단지 배고픈 현실, 가난한 현실만 보고 있다. 그래서 장자인 예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원망은 계속 쌓였고 드디어 폭발하기에 이른다.

요 7장 3절 당신이 하는 일들을 제자들이 볼 수 있게 이 갈릴리를 떠나 유대로 가십시오. 4절 유명해지려는 사람이 숨어서 일하지 않는 것같이 당신도 스스로 유명해지기를 원하면서 이 좁은 갈릴리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유대에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동생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대로 가라니.. 이 말은 나가 죽으라는 말처럼 들린다. 이미 예수님의 동생들은 동네에서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왕따가 된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목했고 그 영향이 예수님의 가족에게도 미첬을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집을 지나면서 수군수군 거렸으며 심지어 욕을 하는 사람들도 생겼을 것이다. 이런 수모가 다 장자인 예수님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동생들은 믿고 있다. 어짜피 자신들을 책임질 생각이 없다면 더 이상 해를 주지 않는 것이 돕는 것이기에... 동생들은 형인 예수님을 버렸다. 나가서 죽어버리십시오.

예수님은 철저히 외로우셨고, 철저히 혼자이셨다. 이러한 그분의 심정은 눅9:58 에 잘 나와 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이렇게 철저하게 예수님을 버렸던 동생들은 훗날 어떻게 되었을까.

야고보서의 저자인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이다. 언제 그가 회심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지난 시간동안 형인 예수님을 철저하게 외면했던 자신의 삶을 돌이키면서 뼈저린 후회와 회개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기독교의 지도자가 된다. 야고보는 자신을 예수님의 동생으로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의 종으로 인정되기를 바랬다.(약1:1)

그리고 또 다른 동생 유다서의 저자인 유다 역시 기독교의 지도자가 되어 열심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한다. 그 역시도 자신을 예수님의 동생으로 인정되기 보다는 예수님의 종으로 인정되기를 바라고 잇다. (유1:1)

예수님을 철저히 배반했던 동생들이 어떻게 이렇게 기독교의 가장 큰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 그들이 예수님의 동생이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형인 예수님을 버렸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님은 가족을 외면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가족을 위한 중보를 놓지 않으셨다. 단지 가족을 위한 것들이 다르게 보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유형에 속하는가. 현실에 매여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인가.

베데스다 병자들..
온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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